I like you: [Pg.4] Blessing Message: [Pg.4] Blessing Message The Testament said...... ------------------------------------------------------------- "El Elohe This Blogger"...
[28/20130128]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내 손을 네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kindness and faithfulness)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창47:29)"
아버지 야곱은 자식인 요셉에게 인애와 성실로 대하여 주기를 원하고 있다. 사실 이는 易設的인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자식에 대한 아비의 인애와 성실함에 익숙한 것이 성서적 교훈으로 일반에 각인된 것이 사실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아비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그(자식)의 인애와 성실을 요청 중이다!
사실상 야곱의 이 당시 연령은 147세를 훌쩍 넘은 시기이다(창47:28). 그 파란만장하거나 영욕의 세월은 어찌 되었든, 요셉에게 의지하고 있는 야곱은 지금 노년의 몸으로 청년 요셉(사실 이 때의 요셉의 연령은 56세로, 그도 청년을 지나 장연 혹은 중년의 세월이었다)이 큰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야곱이 요셉에게 단순히 의지만 하기보다는 그(요셉)로부터 확약을 받아 심신의 안정을 얻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야곱이 요셉에게 청한 '인애와 성실'이란 표현은 개역 성경에서는 '인애와 성심'으로 표기 되었다. 무엔가? 仁愛는 말 그대로 인자함과 사랑하는 마음이다. 또한 誠心은 뜻을 다하는 마음이다. 다시 말하여 "너 요셉은 나에게 인자한 언행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공궤 해 주기 바란다" 하는 요청인 것이다. kindness 즉 친절하고 faithfulness, 믿음직스럽게 나를 모셔달라는 것이다. 참 쉽지 않은 주문이다.
현대인들로서는 가당치 않게 여겨질 정도의 주문이다. 요양원으로 보냄 받지 않기만 하여도 감지덕지하다 이를 정도로, 현대판 고려장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해 져 버린 노인 문에가 현안인 우리에게 있어 야곱의 주문은 어쩌면 참 부담스러운 요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에게 당당히 그렇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한 때는 잃어버렸던 아들, 그의 생사도 몰랐었을 뿐 아니라 그(요셉)의 파란만장하고 억울했던 종살이를 생각하면 요셉이 나 몰라라 해도 시원치 않을 입장이었을텐데.......
우리는 여기서 이해나 상식 그리고 현대 지성주의나 합리주의적 의식으로 이들을 이해하려 한다면 참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인륜과 도덕 그리고 천륜과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이를 넉넉히 이해하고 나아가 지극히 보편 타당한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 오늘 요셉을 향한 야곱의 모습이니, 이는 '복 받을만한 요셉의 인품'이나 '그런 자녀로 만들어 가는 아버지 야곱'이나 넓고 넓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다소 力설的인 시각에서 이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 성도에게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한 듯 싶다. 당신의 인애와 성심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외아들 예수까지도 희생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러한 하나님께서 지금 그 예수로 인해 새로와 진 구원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모습,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물으시며 또한 당신을 사랑하여 주기를 워하시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1월의 달력이 이제 수일이면 가고 없어질 새 해의 행진은 어느덧 2월이 목전이다.
이 신속히 흐르는 인생사에 있어, 요셉이 아버지 야곱으부터 인애와 성실을 요청 받았다면, 우리 또한 창조주이시자 만유의 주재이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요청 받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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