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ke you: [Pg.4] Blessing Message: [Pg.4] Blessing Message The Testament said...... ------------------------------------------------------------- "El Elohe This Blogger"...
20130127 “산상설교 다섯 테마” (마 7:12) 227/522장
마태복음 5-7장을 산상설교 혹은 산상수훈 또는 산상보훈이라 하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The Sermon on the mount"하면 통하는 내용을, 우리 정서에 맞는 번역으로 학자들이 의견을 强化하다 보니,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표현도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 듯합니다. 아무튼 금일 제목은 그 여러 해석 중 그래도 가장 오래된 해석을 따라 ‘산상설교’라는 표현을 선택하면서, 이 설교 가운데 5가지 테마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사실 금주 설교는 1983년도에 출판되었고, 당대 유행하던 영어서적 읽기의 붐이 한창이었을 때는 미처 구하지 못했다가 신학생 시절이 되어서야 구했던 영어 소책자를 지난 주간에 다시 읽던 중, ‘문학으로서의 성서의 위대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추천해 주신 당시 연세 大 C 교수님의 작품해제를 읽던 부문에서 힌트를 내었습니다.
오늘의 다섯 테마는 이렇습니다.
1) 황금률(The Golden Rule)
2) 기도(Prayer)
3) 사랑(Love)
4) 축복(Blessedness)
5) 생활의 염려(The Cares of Life) 등입니다.
우선 첫째로 The Golden Rule(마 7:!2)에 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7:12을 보시면,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 그들은 당신에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는 의미의 말씀을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 하였습니다.
사실 앞서서 7:7-11을 통해, 특별히 7-8절을 통해 우리는 집요한 기도와 긍정적 사고 및 능동적 인생관에 대한 교훈도 찾으며 9-11절을 통해 도덕적 인간관이나 보편적 윤리관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신앙관까지도 교훈을 받게 됩니다만, 결론적으로 12절에서는 ‘그러므로’ 즉 therefore에 해당하는 총체적 규칙 제안 같은 결론이 나오고 이것은 곧 율법이자 선지자(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격자)와 같은 중량감 있는 내용이 力說되고 있으니, 이 구절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구절(passage)이 되는 셈입니다.
Gold가 무엇입니까?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싼 것, 가치 있는 것을 대변하지요? 그러므로 Golden Rule이란 쉽게 변치 않고 값어치 있는 귀하고 가치 있는 Rule, 규칙이란 뜻인데 우리는 이를 ‘황금률’이라 하는 것이지요. 개역이나 개역개정이 번역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당신에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Do to other whatever you would have(like) them to do you.
서로 사랑하며 살 일입니다. 나보다 먼저 남을 낫게 여기면, 남도 자신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것은 아닌 듯 하여도 과연 그런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 여겨지시나요? 공의의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길로 지켜보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마 7:7)에 관한 내용입니다. 앞서도 7:7-8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습니다만 구하면 반드시 주어질 것이며 찾으면 반드시 찾게 될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당신께 열릴 것이라는 것은 기도의 능력과 과정 그리고 긍정적 결과를 우리에게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금주 말씀은 text인 Testament이전 context인 Stories from the Bible(聖書이야기 : 시사 영어사, 1983)을 읽던 중 본문을 text에서 선정한 경우입니다. NIV의 경우 이 구절은 shall이 will로 번역되어 의지력의 해석에 있어 context인 famous stories book보다 약한 느낌입니다. 비록 context였지만 聖書이야기 역본은 이랬습니다.
Ask, and it sha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shall find;
Knock, and the door shall be opened to you.
분명 will로 해석된 NIV 보다는 shall의 의지적 强化가 눈에 띄는 말씀 해석입니다. 기도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의지적 행동은, 반드시 주어지고, 찾게 되고, 문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기도의 가치’를 정당화 해 주는 것이지요.
지난 주간에는 (페북 성목) 멤버 목사님들 가운데 ‘집요한 기도자’의 예를 포스팅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막 7:26이후)을 굳이 소개치 않더라도 주님의 이 산상설교에서의 기도의 법칙은 기도의 가치를 새롭게 그리고 명료하게 언급하신 하나님 자신의 요청이려니 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믿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사랑(마 5:43-48)에 관한 언급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공정, 공평, 균등, 평등과 같은 보편주의적 사유체계를 요구하시는가 봅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아온 무리는 “이웃은 반드시 사랑하고 적에 대해서는 미워하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마 5:43).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그러나 나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는 기도하라고 말한다”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늘 나라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하고 겸하여서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선악을 행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니, 이는 마치 빈부귀천과 의, 불의를 무론하고 모든 만물에 골고루 내리는 비와 같은 것이니 좋으면 사랑하고 싫으면 사랑치 않는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 묻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완전해야 한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처럼” 하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You must become perfect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완전한 사랑! 당대 욕을 먹던 세리들도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않는 그런 가벼운 사랑이 아닌, 무슨 동물 같이 여기던 이방인도 하는 그런 값싼 사랑이 아닌, ‘온전한 사랑’, ‘적군과 핍박자까지도 껴안는 사랑’, 그런 사랑을 行하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최근 미·북간 핵무기 건으로 양국만이 아니라 동북아와 극동 및 태평양 권 일대가 매우 소란해 졌습니다. 저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법이 공의의 채찍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껴안아야 할 인내의 침묵이어야 할지는 이제 국제사회 관계 안에서의 북한 최고지도부의 선택의 문제인 듯합니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이나 주변 열국들의 반응은 냉담해진 것입니다. 이에 터지고 찢긴 후 싸매고 위로해 주는 식의 사랑 나눔보다는 나보다 남 낫게 여기는, 지는 것이 이기는 식 사랑이 분쟁 없는 국가 단위의 사랑의 현실로 가시화 되기를 다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남북한 경직도의 최고조 상태에, 하나님의 깊숙하신 간섭과 친권적인 물리적 치리가 있기를 간구하며 진리가 반드시 이길 것을 믿습니다.
넷째, 축복(마 5: 3-10)입니다. Blessed로 시작되는 8가지 복에 관한 말씀은, 인간이 인간을 축복하는 입장에서 해석한 祝福축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복,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한 말씀 해석이 옳을 것입니다. 물론 말씀의 깊은 내막은 고도의 인생관과 생활관을 기독교 윤리적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말씀대로의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그렇기에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에게 주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에게 Blessedness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政治的 지향은 福祉國家에 있고, 이는 Well State를 좌표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Well being life를 추구하는 福祉國家 구현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인간의 욕심은 그 끝이 없음이 선진국가들의 복지 정책에서 이미 실험화 된 줄로 압니다. 따라서 우리 大韓民國形 복지국가는 福祉국가를 너머서서 福祉國家(Blessing Land)를 회복하고 또한 正治的으로 추구함이 중요 현안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숭고한 넋을 잘 계승하고 유지 발전하여 우리 겨fp 자신이 Well State를 만들어갈 뿐 아니라, 우리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인류 공영을 위해 이바지하는 나라, 그런 Blessing Land가 된다면 이는 비로소 오늘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우리 주님의 원하시는 바 Blessedness의 충분조건이 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은총을 갑절로 받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 200여년(카톨릭 포함)에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나 엄청난 발전이 있었나요? 이것은 곧 복음과 경제적 부흥을 통해 이 놀라운 Blessedness의 은총을 시대지 말에 보다 많은 족속을 향해 잘 베풀어 주는 Israel 국가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소명 아니겠는지요? 이제 한·이스라엘 수교 50주년을 지나 51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현대 지구촌 국가 중 한 국가인 이스라엘과 더불어 전 지중해와 이 태평양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나라 美國의 이름으로 불림 받는 참으로 복된 Blessing Nation, Blessing Country, Blessing citizen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생활의 염려(마 6:25-34)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금 현재 생활의 염려와 경제적 어려움에 있는 분에게 있어 본 절의 말씀은 참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당장 먹고 마실 것과 입고 쓸 것 등 현실에 필요한 물질이 어쩌면 먼저 구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함보다 더 갈급한 것도 사실일테니까 말입니다.
사실상 앞서 언급된 공중의 새, 들의 백합에 대한 예증의 말씀은(26,28절)도 어찌보면 있을 때나 끄덕여질 일이지 지금 당장 내게 없으면 이 또한 쉽게 수긍키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context인 Stories from the Bible의 본문 소제는 The cares of Life 즉 ‘생활의 염려’였습니다. 그런데 New International virsion의 동일 본문 소제는 Do not worry입니다. 같은 본문을 놓고도 혹자는 ‘염려(care)'라는 단어를 혹자는 ’don't worry'라는 ‘염려 말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현황에 대한 대응도에서 오는 차이일 것입니다.
Bobby Mc Ferrin이라는 음악가의 Don't worry Be happy라는 곡이 있는데 매우 경쾌한 경음악성 곡을 통해 희망적 리듬을 선사해 주고 있습니다.
A.S.Pushkin은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는 것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플 것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진다’ 고 노래하면서 염려의 상황을 염려 ‘말라’는 긍정으로의 전환을 예찬하는 모습은, 오늘 주님께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 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34절) 하신 말씀과 맥을 함께 한다 하겠습니다.
The cares of Life, 생활의 염려로 stress 상태이십니까?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나요? 경제적 문제로 어떤 탈출구로든 현실을 도치하고 싶나요? Don't Worry! 염려마세요. 주어진 상황을 솔직하고 투명히 하나님과 사람 앞에 구하고 찾으며 help me 해보세요. 그리고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파람을 불며 새로이 떠오르는 지혜를 구해보세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지혜의 왕,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그 지혜를 구할 뿐 아니라(막 1:15) 이 상항의 반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구해 보세요. 반드시 Be happy 해 질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몰려든 수많은 청중들에게 잔잔히 들려주신 다섯 테마 가운데 황금률과 기도, 그리고 사랑과 축복 외에 염려스러우나 염려 말고 하나님께 구할 지혜를 찾아 휘파람을 불 수 있는 하나님의 싱그럽고 복된 자녀요 성도로 나날이 이기시는 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